ESSAY WRITINGS

인터넷과 텔레비전 없이 살기 :: 인터넷 해지, 테더링, 항공사 조종사, 군대, 육군 항공장교

권렴 2023. 2. 2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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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도 줄일 겸, 올해 2월을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다시 해지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15년 만에 인터넷을 잠깐 사용하다가 다시 해지하게 되었는데, 예전 기억이 나서 기록을 남긴다.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인터넷과 텔레비전은 설치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 후, 강원도 철원군의 2평 남짓한 낡은 독신자 숙소에서 선임들을 피해 숨어 살다시피 지내던 날이 있었다.

시내버스조차 존재하지 않아 도심지로 나갈 수 없던 환경에서 유일하게 사회와 연결될 수 있었던 수단은 인터넷 뿐이었다.

외지에다 시골이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부산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려면 9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휴가도 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방에 갇혀 인터넷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이런 환경에서 살 수도, 아이를 키울 수도, 가족과 함께 지낼 수도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지만, 전역까지는 5년이 넘게 남아서 나가고 싶다고 당장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러면 계속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전역 후에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내 능력을 최대한 키워둬야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서, 일단 서울대학교 출신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기준으로 잡았다.

그동안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놀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그동안의 방탕함을 참회하며 뒤늦게나마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좋은 학벌이나 재력도 없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무작정 열심히 하기로 했다.

 

일단 무조건 공부 시간을 늘려야 했다. 강제로 공부를 할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걸림돌이 있었다.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인터넷이 나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나의 모든 생활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인터넷을 해지했다.

인터넷을 해지하자 낭비하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고, 남는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공부나 운동을 하게 되어 성적과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전역이 가까워지자 목표로 했었던 기준을 훌쩍 넘겼고, 그동안의 바람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인터넷 강의와 실시간 방송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시 인터넷을 설치했었다.

이 공부 방법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지만, 이사를 하면서 흐름이 끊어졌고, 이제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정신도 해이해졌다.

적당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 당장 얼어 죽을 것 같지는 않을 환경, 이런 환경들이 간절함과 절박함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렸다.

 

최근 들어, 군대에 있을 당시의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이렇게 게으르게 살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도, 더 넓은 집으로 갈 수도, 고양이 병원비를 낼 수도, 낡은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할 수도 없다.

이렇게 설렁설렁 살다간 다시 낭떠러지로 떠밀리는 절박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 걸림돌부터 치우기로 했다.

꼭 인터넷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테더링이나 아파트 구내 카페를 잠시 이용하기로 했다.

 

 

인터넷 해지를 하려고 하니, 무조건 전화 상담을 한 이후에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이 위약금도 없었고, 전화 통화 후에 28일을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완전히 해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왜 인터넷을 해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인터넷이 있으면 편하고 재밌고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좋으니까 해지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인생이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당장 바뀌어야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담배를 끊고 싶다고 말만 하면서 손에 든 담배를 당장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생 담배를 끊지 못한다.

도박을 끊으려면 손목을 자르는 수준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화 타짜에서 고광렬은 손모가지가 날아갔는데도 결국 죽을 때까지 도박을 끊지 못했다.

 

나도 내 절제력을 믿지 않는다. 인터넷을 해지하지 않고도 내 의지만으로 인터넷 사용량을 조절하며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런 실수는 학창 시절에 이미 경험을 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세워둔 계획들을 미루지 않고 매일 달성을 하는 것이 목표이며, 시간이 남으면 다른 계획도 추진하려고 한다.

일단 적어도 쓸데 없이 유튜브, 게임, 영화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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