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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결혼식을 통해 내 주변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괜찮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큰 기대가 없던 사람들의 호의로 인해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오래된 인연이라고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며, 짧은 인연이라고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 코로나19가 끝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하고 있고, 앞으로 주변 지인들의 결혼식도 예정되어 있다.

최근 예식장들은 그동안의 손실을 보전하고 물가 상승에 따라 식대를 계속 올리는 추세라, 혼인 당사자들은 물론 하객들도 축의금에 대해 고민이 생긴다.

지금까지 나 또한 하객으로서 큰 고민 없이 축의금을 냈었는데, 이제 결혼식을 끝낸 당사자 입장에서 바라보니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인간관계의 당연한 도리나 예의라고 생각하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호구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결혼식을 겪으면서 있었던 예상치 못했던 일들과 그와 관련된 내 생각을 기록해두려고 한다.

 

ㆍ축의금에 담긴 의미

 

보통 결혼식은 평균 4천만 원 정도의 큰 비용이 드는 행사로 결혼 당사자들의 비용으로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하객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최소 250명의 식대를 미리 계산하기 때문에, 하객 수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 만큼은 금전적인 부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요즘 예식장 1인 식대는 평균 7만 원에서 비싼 곳은 9만 원까지도 올랐기 때문에, 소액이라도 축의금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축의금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살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래서 부조금(扶助金)이라고 한다.

결혼식은 단순히 두 사람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관련된 주변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관계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지에 흩어진 바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서 안부를 묻고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민을 간 한국인들이 왜 굳이 특정 지역에 다시 모여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생활하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ㆍ축의금의 법적 해석

 

 

바쁜 주말에 어렵게 시간을 내어 찾아준 손님들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축의금을 낸다는 것을 법적으로 해석해보면 암묵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채무이자 채권으로도 볼 수 있다.

세상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다면, 나도 상대방에게 그것을 갚거나 다른 형식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생긴다.

결혼식으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 장례식이나 각종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돕자는 의미의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무시한다면 사기꾼이나 다름 없다.

 

상대방이 내 결혼식에 참석했다면, 나 또한 상대방의 결혼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사정상 불가능하다면 금전적인 도움이라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암묵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약속을 깬 것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신의를 잃게 되어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이런 것들을 교우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깨우치거나, 부모님을 통해 가정교육으로 당연히 배우게 된다.

 

불과 몇 달 전에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축의금도 적지 않게 받았음에도, 내 결혼식에는 연락 없이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마저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 주변에서 평판이 괜찮았던 사람이라 혹시나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지 알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도 꽤 놀랐다.

나는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어떠한 도움도 줘서는 안 된다고 결심하고 거리를 두기로 했다.

 

한국처럼 작고 좁은 나라에서 이렇게 신의를 깨는 행위를 한다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주변에서 금방 알게 된다.

게다가 그 안에서도 조종사처럼 규모가 작은 집단에서는 그런 소문은 훨씬 더 빨리 퍼지게 된다.

어떠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객관적이고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그 사람의 진의를 판단하기가 매우 쉽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축의금이란 단순히 그 돈을 가치를 넘는 사회적 책무이자 관계의 확인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도움을 받았으면 갚는 것이 상식이며, 도덕적으로도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ㆍ청첩장 전달 시 참고사항

 

그러면, 이런 중요한 행사에 손님을 초대하려면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

친한 친구들은 연락하기가 쉬웠지만, 평소에 연락을 잘 하지 않던 선배나 후배, 직장 동료들에게 연락을 할 때에는 약간의 용기도 필요했다.

나는 평소에 주변에 연락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서 갑자기 연락하는 것에 상당한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 일정 수준 이상의 식사 대접, 종이 청첩장 직접 전달의 세 가지는 반드시 충족하려고 했다.

 

먼저 연락하기 조금 어색하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 손으로 직접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주변 대부분의 지인들이 조종사라 주말에 당연히 쉬는 것이 아니라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휴가까지 내서 만나기도 했다.

 

조종사는 2달 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2달 전부터 가능한 날짜와 시간, 장소를 물어보고 모임을 가졌다.

2달 동안 단 하루도 시간이 되지 않는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올 사람은 결국 오기 마련이었다.

도저히 시간이 안되는 경우는 서울에서 인천까지 직접 가서 청첩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전달할 때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전달했다. 대충 인쇄해서 뿌리는 광고 전단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득이하게 우편함에 청첩장을 남길 때에는 청첩장과 함께 간단한 간식이나 선물을 남겨서 절대로 빈손으로 전달하지 않았다.

식사의 경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 평소에 자주 만나지도 못하기 때문에 금액이 조금 부담되더라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대접 받고 청첩장도 직접 받았으며 참석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히고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참석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청첩장을 받으면 반드시 RSVP를 해야 한다. 본인의 참석 여부를 밝혀서 미리 인원 산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식사 대접을 받고 청첩장까지 직접 전달받았다면, 당연히 결혼식에 참석을 하거나 축의금이라도 보내주는 것이 기본 예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인간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며 가급적이면 거리를 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런 경우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나에게 도움을 주었거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대사관과 미국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지인들도 아무리 미국이 개인주의라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절대로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이익만을 취하고 약속을 깨는 사람과 더 이상 무슨 일을 함께 할 수 있을까?

 

ㆍ결혼식이 끝난 이후

 

 

어떤 사람들은 결혼식 중에는 정신이 없어서 누가 왔다 갔는지도 잘 모른다고 말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기억이 다 난다.

결혼식이 끝난 직후에 결혼식에 참석했거나 축의금을 보낸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연락이 안되는 경우에는 문자 메시지라도 남겼다.

축의금을 보낸 사람들 중에는 몇 년 전에 겨우 비행을 한두 번 했던 기장님, 이름도 몰랐던 부기장님, 항공사 조종사 입사를 도와주던 교육생도 있었다.

나쁘게 보면 눈 먼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이 축의금이 그렇게 가볍게 보이지가 않는다.

앞으로 이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받은 금액에 이자를 붙여 도와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능력, 외모, 사회적 지위, 재력 따위의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딱 하나, 사람의 인성 중에서도 신의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신의가 없는 사람이 그 우수한 능력을 나를 위해 사용할까? 오히려 그 우수한 능력으로 나를 공격하지만 않으면 다행일 수도 있다.

오히려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신의를 지키고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나에게는 훨씬 큰 도움이 된다.

이번 일로 인해 신의가 없는 그들을 공격한다거나 미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내 인간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바깥으로 내보낼 뿐이다.

 

결혼식을 한 번 치르고 나면, 인간관계가 정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거나, 너무 염치 없이 행동하는 무례한 모습들을 보며, 객관적으로 그 사람을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그렇게 가치관이 굳어진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려줄 수도 없고,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다.

집에 물건이 많으면 뭘 버려야 할 지 모른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버릴 사람은 버려야 남은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와의 관계 등은 서로 명칭이 다를 뿐, 모두 같은 인간관계의 영역에 속한다.

그 인관관계를 잘 이끌어 나가려면 핵심이 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서 판단해야 결정하기가 쉬워진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신의이며, 나에게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상황은 항상 바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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