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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회전익 항공기로 의료 지원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헬리콥터는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이 아니다. 기본적인 설계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할 수 밖에 없는, 낙하산보다 더욱 위험한 형태의 항공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이유는 어떤 곳에서도 이착륙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개발된 일반적인 회전익 항공기의 구조적 특성상 최대 속도가 200KTS를 넘지 못하지 때문에 비행기만큼 빠른 이송은 불가능하다.

V-22 OSPREY 같은 하이브리드 항공기가 가장 적합하지만, 이 항공기는 한국에서는 단 한 대도 구입할 여력이 없고 운용할 능력도 없다.

헬리콥터의 느린 속도 때문에 환자 이송이 늦어져 사망한 해병대원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안타깝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군대에서 6년 간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헬기 사고로 생을 마감한 선배와 동료의 죽음을 직접 겪어왔기 때문에, 이국종 교수님과 함께 생명을 구하고 있는 선배 조종사들의 이러한 사명감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이국종 교수님과 그 팀원들은 이러한 헬기의 위험한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바쳤고 또 여전히 바치고 있다는 점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의사가 스스로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사명감을 지키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과연 나는 10년에 가까운 군생활을 한 군인으로서, 그리고 조종사로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국종 교수님이 정착하고자 노력하는 이러한 중증외상센터는 지금의 한국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치료비를 낼 여력이 안되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발생하는 손해는 결국 병원이 부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증외상 환자들은 대부분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거나 군인들이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 일반적인 회사원들은 그러한 심각한 상해를 입을 가능성이 이들보다 비교적 매우 적을 것이기 때문에 당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돈이 안되고, 당장 필요가 없는 일에 막대한 투자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이러한 시스템 정착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돈을 벌어야 직원들 월급을 주고 병원을 운영할 것이 아닌가. 병원에 적자만 늘여나가는 교수님의 행동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지만, 병원 또한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과대학 교수의 역할은 교육, 연구, 진료라고 한다.

조종사로서 나의 역할은 자기 관리, 비행 연구, 자기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맑은 정신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며 비행을 하고,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비정상 상황들에 대비하기 위한 공부를 하며, 그 비행기의 리더로서 어떻게 팀원들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지 스스로 자기 성찰을 하며 올바른 인성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국종 교수님은 혼자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의사인 본인과 주변 동료들, 간호사와 헬기 조종사, 그 주변 관계자까지 모두 한 팀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내가 비행기를 조종하며 마주치는 승무원과 정비사, 운항관리사, 일반직 직원들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비행기를 책임지는 기장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가?


1억에서 2억 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내가 해야 할 일에 소홀하며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내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가?

군대에서 35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그 세 배가 넘는 돈을 받으면서 무엇이 부족해서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내 깜냥을 벗어나는 일을 하려고 하는지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단지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친구들, 가족들과 술 한잔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 땅이 얼마이고, 잠실의 아파트가 얼마나 올랐고, 나에게 있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의학계의 그랜드 라운드(GRAND ROUND) 강연은 한 주제나 분야에 대해 여러 의사들이 함께 토론하는 방식으로, 현재 한국의 모든 의과대학에서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조종사 각자의 생각이 모두 다르고, 지식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이 항공업계에서 필요한 방식인데, 스케쥴 근무의 특성상 이를 정착시키기는 쉽지 않다.

간혹 비행을 하면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기록하는 비행 연구는 스스로 공부하는 것도 있지만, 어쩌다 내 글을 보며 주변 조종사들이 간접적 경험이라도 하며 지식을 쌓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그 비행기에 내 가족이 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님, 대한민국에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만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그것만이 심각하고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문제인가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예술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녹록한 부분이 있는 줄 아세요?"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세상이 이런 건데요."


타국 공항에 있더라도 비행기 내부는 한국 영토로 인정된다. 비행기 꼬리 날개에 붙어있는 작은 태극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장은 그 비행기의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책임감의 무게를 안다면 기장이 되는 것을 그리 가볍게 여길 일 만은 아닐 것이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모든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그러니까 외상센터고 외상외과고 뭐건 간에요. 최근에 벌어진 이런 어려움을 겪고 통과해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실 거예요. 정말 외상센터 선정이고 뭐고 다 떠나서요. 그저 지나 보내는 것만으로도 말입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일들, 법원에 출두하고, 로펌에 찾아가고, 시험을 치고 떨어지고, 사랑에 성공하고 실패하고, 그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어려움들을 피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당적을 한나라당에 두고도 경기도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 소속 도의원들을 설득해나가며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지원할 예산 확보에 힘썼다.

소방서에 전화하여 자신의 존재를 온 나라에 알렸던 그 경기도지사 말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저 이 분을 강력한 꼰대 정신으로 무장한 답 없는 정치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그의 행위가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마땅히 옳은 일로서 조명받아야 할 부분은 감춰진 채, 어쩌면 권력에 심취하여 저지를 수도 있는 실수에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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