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모든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릴 적 생각했던 평범한 삶은 평범한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학, 직장, 애인, 결혼 등, 남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기보다, 상대방의 눈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알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알아갈수록 내가 나라고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과 새롭게 발견해 낸 모습 사이에 모순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나의 모순된 모습을 받아들이고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계속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에서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믿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가지 적당한 집안과 학벌, 외모, 좋은 직장, 주변의 좋은 평판들을 듣고보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옳은 줄 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겪어온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은 '나쁜 사람'을 기조로 사람의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그러한 것들이, 그 사람들의 본질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황이 사람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대를 넘어서는 비범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그 기준으로 사람을 고른다면 원하는 사람을 찾기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내 조건과 수준에 맞는 비슷한 사람을 찾아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깨닫기 위한 과정과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결혼을 가볍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그 사람과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완벽하진 않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확신을 가진 이후에야 결혼을 결심할 수 있게 된다.
ㆍ결혼정보회사에서는 정보를 주지 않는다
결혼정보회사는 처음부터 결혼을 할 목적으로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30년 넘게 여자를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으니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혼정보회사에서 보는 결혼에 대한 시각과 나의 시각에는 차이가 있어 그만 둔지 오래지만,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조건을 맞추려고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조건은 커녕 나이나 학벌, 직장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것이 있다.
어른들은 사람을 많이 만나보라고 한다.
이 말은 아무나 만나서 연애를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면 사람을 보는 눈,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던 이유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지금까지 사람을 많이 만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종사를 준비하고 취업 후, 정직원이 될 때까지 2년에서 3년 정도는 걸린다. 그동안 연애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고 일부러 기회를 차단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인지 주변에는 서른 중반이나 후반이 지나도 결혼하지 않은 부기장들이 많은 편이고, 결혼하는 시기도 많이 늦어진다.
그 이후, 지인 소개부터 결혼정보회사까지, 조종사가 된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잠깐의 대화에서도 어느 정도는 상대에 대해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비행이 끝나고 쉬는 날에는 학원에서 공부하듯이 자리에 나가보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차츰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정보회사는 명색이 '정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중요한 정보는 하나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 결혼정보회사가 제공하는 정보는 부모의 출신, 재력, 가족 관계, 직장과 연봉, 키, 몸무게, 사는 곳 등, 외적인 조건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인성, 성격, 배려심, 위기 대응 능력,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정보는 전혀 없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여성들을 소개할 때, 몇 번씩이나 강조하는 말이 "정말 예쁘니 한번 만나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나를 뭘로 보길래 이런 말을 하는가 생각이 들면서, 결국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좋은 사람을 골라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 사람들의 진실성이나 가치관들을 가려내는 것은 온전히 자신이 직접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계약서 상으로는 총 10회의 기회를 주지만,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게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많은 기회가 주어져서 비교 대상이 생기니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끝 없이 비교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교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와 부모와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외적인 조건들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특정 직종의 사람을 골라서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다.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진다.
그리고 곧 알게 될 것이다. 조건이라는 것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조건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블라인드 앱을 보면 온갖 쓰레기같은 인성과 불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 외모와 조건도 괜찮다. 그런데 사람들은 직업과 조건이 좋다고 인성도 좋을 것이라 착각한다.
ㆍ조건은 우리의 눈을 가려버린다
결혼할 때 경제적인 능력을 많이 본다. 그런데 그 경제적 능력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직접 이룬 사람이다.
부불삼세라는 말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부자에 대한 속담인데, 1대가 이룬 재산을 2대에서 유지만 하다가 3대에서 탕진한다는 것이다.
정말 경제적인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면 지금 가진 것이 아니라, 성실성과 성장 가능성, 비전을 보는 것이 더 낫다.
학벌이나 경제적 능력이 좋은 사람들도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항공사에서 비행기 사고를 일으킨 조종사들은 대개 그 과정을 1등으로 수료한 엘리트들이었다.
내가 입사 후 비행 교육을 받고 있을 때, 같이 비행했던 부기장은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귀찮아서 휴가를 내지 않고 일부러 출근했다"고 말했다.
다른 어떤 부기장은 면세점에서 가족들에게 줄 영양제와 선물을 가방 빼곡히 사다가 힘겹게 끌고 다녔다.
사람을 선택할 때 조건의 비중은 줄이는 것이 좋다. 그 조건, 혹은 외모에 눈이 멀어버리면 사람을 제대로 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 조건이 좋은 사람들은 계산이 빠르고 어떤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소개받거나 선 자리가 들어오면 일단 외모나 조건부터 보고 만날지 말지 판단한다.
내가 학벌이 부족하니 학벌이 좋은 사람을 찾고, 내가 돈이 없으니 돈이 많은 사람을 찾고, 내가 키가 작으니 키가 큰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려고 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바뀌지 않는데 미래가 바뀔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식을 서울대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보다 내가 공부해서 직접 서울대학교에 가는 것이 더 쉽고 빠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가?
ㆍ우리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 상대는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 룸메이트를 고르듯이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비즈니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럿 중에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을 고르는 상대 평가가 아니라,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을 찾는 절대 평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를 사귈 때, 그 친구의 사회적 지위나 외모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친구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아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해받지 않을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헌신하고 모든 시간을 나에게 투자해야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는 결혼을 하기도,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생기는 변화는, 사람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이해를 하게 되니 갈등이 생겨도 좀처럼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상황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를 해버리니 화가 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단지 참는 것이 아니라, 갈등에 대해 완전히 이해를 해버리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명확한 답이 나오기 때문에 화가 날 이유가 없어졌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주어지면 화가 나지 않듯이 말이다. 이해심이 넓어지니 여유가 생기고 아량이 생기고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술 많이 마셔도 된다. 담배 피워도 된다. 대마초도 괜찮다. 교회 다녀도 되고 종교가 사이비라도 괜찮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못 끊는 것이 문제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기다리면 된다. 생각하고 바뀔 시간을 충분히 주면 된다.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과감히 떠나면 될 일이다.
ㆍ절대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같은 기준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나는 강을 건너야 하는데 포르쉐를 사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포르쉐보다 낡은 나룻배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더 올바른 선택일 수도 있다.
좋은 조건, 좋은 외모, 그러한 남들이 부러워할 조건들을 내가 가진다고 한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종사와 승무원은 직업적 특성상, 일반적인 직장인에 비해 집을 비우는 일이 잦을 수 밖에 없다.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
짧으면 3일에서 4일, 길면 14일까지 집을 완전히 비우는 경우도 많다. 분기마다 회사에서 평가를 보는 기간에는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지기도 한다.
조종사의 성별에 관계 없이 가정생활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집을 자주 비우게 되니 육아나 집안일을 한 사람이 몰아서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갈등을 '일이 원래 그런건데 어쩌라고' 식으로 대응한다면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직업적 특성을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싸움만 잦아질 것이다.
만약 조종사를 반려자로 선택했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책을 세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비행기가 뜨기 전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예비 공항만 서너 개 선정된다. 그러나 인생의 반려자는 단 한 명 뿐이다. 고민을 해도 수십 번은 더 해야 한다.
연애할 때는 별 것 아니지만, 만약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웬만한 배려심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직업군이다.
조종사는 안정적인 전문직이 아니다. 일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정한 직업이다.
생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업무 중 어떤 사고도 발생해서는 안 되며, 1년에 3번 이상 치루는 시험에서 탈락이라도 한다면 그대로 직장을 잃게 된다.
잦은 시차 적응과 밤샘 근무, 우주방사선 등으로 인해 몸이 쉽게 망가지는 위험한 직업이라 보험료도 일반적인 직장인에 비해 훨씬 비싸다.
그래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무리 속이 상하더라도 참아야 할 때가 많을 것이다.
물론, 조종사인 배우자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더라도, 자신이 모아둔 재산이 많거나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대로 해도 상관 없겠다.
만약 결혼정보회사에서 내 수준과 조건에 맞는 좋은 사람들을 알아서 골라줄 것이라 기대한다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배워가고자 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빠를수록 좋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지불했던 금액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많을 것들을 배워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을 골라서 구입하려는 상점이 아니라, 내가 만날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이라는 생각으로 간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은 책이나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