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한 지 5년이 넘어가는데 군대 이야기를 왜 쓰나 싶긴하지만, 외장하드 정리하다가 사진이 나와서 정리하는 겸 올린다.
인터넷에 해당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올려놓은 것을 봐서 직접 겪은 사실을 토대로 정리해본다.
군대라는 곳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무작정 10년이라는 기간을 보내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읽어보고 판단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당 모든 사진 및 영상 등의 내용은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보안성 검토를 거쳤으며, 보안상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았음을 알린다.
ㆍ육군 항공장교가 되는 방법
육군 장교가 되는 방법에는 육군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학사장교(OCS), 학군장교(ROTC) 등 여러가지가 있다.
육군사관학교의 경우에는 임관할 때부터 항공 병과로 임관하기 때문에 별도의 시험을 거치지 않고 육군 보병 소대장으로 1년 복무 후 육군 항공학교에 입교한다.
그 외의 나머지 출신들은 일반 장교로 1년 이상 복무하면 지원 자격을 얻게 되는데, 각자의 사정마다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달라지기도 한다.
육군 장교에 뜻이 있어서 계속 진급할 생각인데, 만약 항공장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질 경우에는 괘씸죄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해당 부대의 지휘관의 허락을 받아야 지원할 수 있는데,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일단 다른 병과에 지원하려는 의사만 비춰도 진급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진급에 뜻이 있다면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육군 항공장교는 장기복무 장교로서 의무복무기간이 10년이다.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10년을 다 채우지 않아도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만둘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육군 항공장교가 되면 그 순간부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10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 범죄자가 되지 않는 이상, 도중에 그만둘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예전에는 5년차 전역이라는 기회가 있어서 적성에 맞지 않다면 도중에 그만둘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전역을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쉽지 않다.
평생 시골에서 살아도 괜찮은지, 계급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진급에서 누락되면 40세 중반의 나이에 전역 후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군부대는 주로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시골에 있기 때문에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며, 거의 매년마다 이사를 다니기 때문에 주거가 안정적인 편은 아니다.
의무복무기간 10년이 끝나고 바로 전역을 한다면 35세 정도인데, 딱히 내세울 경력이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취업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래서인지 지원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고 합격을 한 뒤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 지금도 경쟁률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ㆍ육군 항공학교 입교 시험과 난이도
자세한 내용은 공고를 보면 알겠지만, 필기시험인 항공 상식, 한국사, 영어가 있고, 면접 등으로 나뉘는데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필기시험은 크게 어렵지 않아 조금만 공부해도 100점을 맞을 수 있을 정도였으며, 경쟁률도 2:1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었다. 경쟁률은 지금도 비슷하다고 한다.
영어의 경우에는 시험 문제를 TOEIC에서 일부 차용했는데, 난이도가 어려운 편이 아니라서 만점을 받기 어렵지 않고 다른 과목도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면접의 경우도 이미 인사 기록에 모든 것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사실상 면접은 큰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영어 실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고 실무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항공관제가 영어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항공관제를 영어라고 보기도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전달할 경우에는 한국어로 교신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항공관제는 한국인 관제병들이 담당하고 한국 내에서는 한국어로 관제해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영어는 큰 비중이 없었다.
ㆍ육군 항공장교 양성과정과 생활
시험에 합격하면 총 10개월 정도의 가입교 기간을 거치는데, 이 기간 동안 조종사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평가받게 된다.
첫 날에는 산악 지형에서 3M 이내의 높이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전술비행으로 담력을 시험한 후, 다음 날부터 하버링으로 교육을 시작한다.
하버링만 일주일 정도를 훈련받아야 겨우 헬리콥터를 조종할 수 있게 되고, 장주비행을 거쳐 계기비행, 전술비행으로 과정이 진행된다.
전술비행은 적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 나뭇가지를 스치면서 비행하는데, 나뭇가지 갯수도 셀 수 있을 정도라 공포심으로 그만두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
다만, 과정만 잘 따라가면 합격에 문제는 없는 편이다. 중도에 퇴교하는 사례도 있긴 하지만 몇 년에 한 명 정도로 매우 드물다.
차수마다 공격헬기와 기동헬기 기수로 나뉘는데, 기종은 선택할 수 없으며 과정이 끝나도 배치가 무작위이기 때문에 기종은 큰 의미가 없다.
기동헬기 기종은 500MD, UH-1H, UH-60으로 나뉘고, 공격헬기는 AH-1로 나뉘었는데, UH-1H는 퇴역하면서 수리온으로 교체되었다.
CH-47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지원해서 전출을 가는 곳이지 처음부터 배정받을 수 있는 기종이 아니다.
또한 이 기종을 운용하는 부대에 전출간다는 것은 사실상 진급은 끝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비행을 많이 하는 만큼 진급은 더 힘들어진다.
육군 항공학교의 모든 과정을 수료할 때 장기복무 장교 지원서를 제출하는데, 100% 장기복무를 하도록 되어있어서 선택권이 없다.
이것 때문에 많은 항공장교들이 아무리 전역하고 싶어도 전역할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지게 된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항공장교들이 전역 후 항공사 입사에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제때 전역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화두였다.
그리고 그렇게 5년차에 전역한 주변 항공장교들은 모두 항공사에서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ㆍ육군 항공장교 생활과 진급
항공장교는 그 명칭처럼 조종사가 아니라 육군 장교이기 때문에 비행기술보다는 군인으로서의 전술적 식견, 병력 운용 등 장교로서의 자질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항공준사관이 항공기 조종을 전담하고 항공장교는 그 외 부대 운영 등의 모든 분야를 담당한다.
보통 군대에서 회전익 항공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육군 항공장교와 항공준사관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항공장교의 장점은 항공준사관에 비해 위험한 헬리콥터를 굳이 많이 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며, 본인의 선택에 따라 비행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항공장교로 복무할 경우, 대부분 비행임무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한 달에 평균 5시간 전후로 비행하게 된다.
주변 동료들도 초기에는 비행은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다가, 실제로 비행을 해 본 뒤에는 비행을 좀 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항공장교 본인이 더 이상 진급에 뜻이 없다면 항공준사관처럼 비행임무만 계속 전담하면서 비행시간을 많이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그 외에 대부분의 항공장교는 주어진 일만 한다면 업무 강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진급에 뜻이 있다면 군부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야 한다.
인력 부족으로 온갖 일을 다 하기 때문에 비행보다는 잡초를 베거나 페인트 칠을 하거나 땅을 파는 일이 더 많았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진급도 어렵고 근무환경도 상당히 열악하여, 장기복무 장교 임명 후 5년차가 되던 해에 거의 대부분이 전역 신청을 했었다.
근무지가 주로 읍, 면, 리 등의 격오지이며, 미혼자의 경우에는 매년마다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에 생활 여건이 안정적인 편은 아니다.
빵이라도 하나 사먹으려면 2시간에 1대가 배차되는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환경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게다가 위수지역으로 인해 별도로 휴가라도 받지 않는다면, 그 지역에서 2시간 이상의 거리를 벗어날 수 없어 집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결혼 시장에서도 딱히 선호되는 직종은 아니며,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 임관을 하자마자 결혼을 한다.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지만 특별한 인맥이 없다면 소령에서 진급이 끝나고, 그렇게 40세 중반의 나이에 전역한다면 미래가 위태로울 것 같았다.
이런 이유로 전역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국방부에서 심각하게 논의를 하였고, 2016년을 마지막으로 5년차 전역이 사실상 제한되었다.
무조건 10년을 복무하고 전역한다면 약 35세가 되는데, 이 나이에 진로를 바꾼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내가 전역할 그 당시에는 항공장교의 약 90% 정도가 5년차에 전역하였기에, 전역을 제한하려는 국방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물론 지금도 전역하려는 항공장교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만 완벽하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정말 불가피하게 전역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심사를 해서 전역을 허가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가 반려될 경우에는 진급도 막히고 전역도 못하게 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ㆍ사회적 인식과 위험성
알다시피 군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스스로 군인이라는 자부심만 가지고 생활하기엔 버틸 여력이 부족했다.
사관학교에서부터 민간인에게 이유 없이 맞아도 그냥 맞고만 있으라고 교육받았고, 민간인이 이유 없이 폭행해서 맞기만 해도 군인이 처벌을 받았다.
실제로 민간인의 잘못으로 폭행사건에 휘말려 맞기만 했는데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를 받은 사례를 보기도 했다.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은 임관을 하자마자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존감은 바닥을 보였다.
군대는 제3세계라고 봐도 될 정도로 일반적인 사회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생각한다면 많이 어려울 수 있다.
항공장교는 보험을 가입할 때에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회전익 항공기 조종사는 보험 위험등급이 1등급이며, 직업(상해)등급도 E등급으로 오토바이 운전자와 동일한 최상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인 병과의 군인은 보험 위험등급이 3등급, 직업(상해)등급이 C등급으로 중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고속버스 운전기사와 동일한 등급이다.
분류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가장 위험한 직군에 속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군인들보다 보험료가 훨씬 비싼 편이다.
영화 '탑건'에서 매버릭의 동료가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 가족 생각이 나서 일을 그만 두는 장면이 나온다.
나를 포함한 모든 주변 회전익 항공기 조종사들이 전역 전까지 최소한 한 번 정도는 비행 중 죽을 고비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헬리콥터는 대부분 저고도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고압선이나 고층 빌딩에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고, 엔진이 갑자기 꺼져서 추락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실제로도 자대에 배치가 되자마자 동료 조종사가 헬기 사고로 사망했었는데, 그 당시에 충격이 꽤 컸었다. 그 일을 겪은 뒤에 내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 이후로도 헬기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오토바이 사고처럼 빈번한 일인지 뉴스에 보도가 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금방 잊혀지고 만다.
실질적으로 항공장교는 조종사가 아닌 육군 장교이다. 일정 계급 이상으로 진급하면 비행할 기회는 거의 없다.
또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사명감 없이 10년이 넘는 군생활을 버티기는 힘들 것이고, 어렵게 버틴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들을 보상해 줄 장치도 없다.
육군 장교 임관까지 2년, 소위에서 중위까지 1년, 항공장교 양성교육 1년, 그 이후 의무복무기간 10년을 합하면 총 14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
군대라는 곳을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14년을 보내야 하는데, 도중에 그만둘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적당히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아주 고통스럽게 버티던 사람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큰 스트레스 없이 즐기면서 일을 하는 것과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참으면서 억지로 버티는 것과는 삶의 질 자체가 다르다.
같은 일이라도 적성에 맞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직장이며 천국이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된다.
의무복무기간이라는 것이 왜 있는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근무환경이 좋거나 급여가 높거나 복지가 좋은 회사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대에 대해서 알고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회전익 항공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군인이므로 자신이 군인으로서 적성에 맞는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능력도 많이 작용하고, 친인척의 인맥도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일단 임관을 하게 되면 도중에 그만둘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만약 군인이 되고 싶다면 그 출신자들에게 자세히 물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최소한, 주변에 전역한 사람들에게 군대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물어본 뒤에 결정해도 절대 늦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군인은 이러한 열악하고 위험한 업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므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국가는 물론 사회의 인식도 예전에 비해 점차 나아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 희생에 합당한 보상을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