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에는 느끼는 점도 많지만, 그 생각들이 쉽게 흩어져서 조금만 지나도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 잦다.
영어공부 때문에 몇 년간 영어로만 글을 써오다가 이제서야 한글로 글을 써보니 어색한 점도 많고 맞춤법이 많이 틀리는 것 같아서 여간 신경이 쓰여, 조금씩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문학, 문학과 동떨어져있어 일부러 인문학 분야를 읽는 편인데, 볼 만한 인문학 책 중 강신주 작가의 감정수업 이후로 두 번째인 것 같다.
사람보다 동물이 좋고, 동물보다 기계가 편한 짙은 아웃사이더 기질과 내성적인 성격 덕분에 문과 성향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강제로라도 책을 읽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크게 여덟 가지의 단어를 제시하며 이야기를 한다.
자존, 본질, 고전,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 단어들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드는 생각은,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게됨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많아져서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단점도 있는 반면, 좋은 점은 그러한 많은 경험과 지식으로 인해 어떤 대상에 판단하기 위한 정보의 양이 풍부하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며, 이는 곧 타인에 대한 이해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지는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의 인생을 단지 몇 개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지만,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무시하지 말고, 무시당하지 말고, 서로의 인생과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사람은 결국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20대의 시작부터 끝나갈 무렵까지 자존감이 많이 낮았었다.
별 볼일 없었던 학벌이 이유일 수도 있고, 군인이 가지는 사회적 위치와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군대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적응을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군대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계급체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인은 부모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가 아니기에, 자존감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야 하겠지만 그 당시에 나 혼자 그 문제를 해결하기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몸조차 돌볼 여유가 없는 주변 사람들과 경직된 군 체제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학벌도 문제가 아니었고, 직업도 문제가 아니었고, 외모도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단지 내가 스스로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고 모든 원인을 주변으로 돌린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은 어느정도 자존감을 회복한 것 같지만, 이따금씩 불쑥 튀어나와 마음 속을 헤집어놓고 가는 걸 보면 자존감이라는 것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책에서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대입 직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라디오를 통해 클래식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 느낌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이었다. 또한 그때의 감정에 따라서 그 곡이 의도하는 바와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쯤 비올라의 음색이 마음에 들어 조금 배우기도 했는데, 어릴 때 배웠던 피아노, 사관학교 시절 배웠던 비올라, 전공자였던 군대 동기에게 잠깐 배웠던 플룻, 모두 내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준 한 부분이고, 끝까지 제대로 한 번 배워보고 싶어서 항상 생각은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나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해서, 말하기에 재주가 없는 편이다. 그런데 '원래 그렇다'고 해서 그렇다고 인정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꾸기 원한다면 고쳐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고인 물처럼 계속 거기에 있을 것이며 소통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내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가장 피하고 싶은일에 정면으로 부딪쳐서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매일 책상에 엎드려서 자던 공익근무요원도 어머니를 돕기 위해 밤새 일을 거들다보니 그런 것이었고, 그 친구가 나에게 화냈던 이유도 알고보면 그 상황에서는 나도 그랬을 것처럼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카페에서 그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던 것도 알고보면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소한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다.
나 또한 결국 죽기 직전까지 불완전하게, 사소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게 살겠지만,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