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의 위대한 목적이라고 하는 이른바 삶의 조건의 개선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지위와 이름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이 주목한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관심을 가진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위와 이름을 가지려고 경쟁하고 노력한다.
반면, SNS나 인터넷 등 매체가 발달한 현대의 특성으로 인해 그 말이나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주어지므로 비난도 피할 수 없다.
첫 번째 사랑은 성적인 사랑이며, 두 번째 사랑은 세상이 주는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 은밀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다.
세상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두 번째 사랑을 받지 못해 자존감이나 자존심이 추락하기도 한다. 또는 그 사랑을 받은 만큼 추락하는 깊이가 커져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있다.
속물근성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을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 것, 즉 그 사람의 조롱받아 마땅한 매우 유감스러운 차별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다.
속물은 명성과 업적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의 외적인 환경이 바뀌면 누구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삼는 것이 좋을지 잽싸게 재평가를 해보곤 한다.
어른끼리 하는 사랑은 어릴 적 받아왔던 부모의 사랑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나의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사랑해주기를 원한다. 어른끼리 하는 사랑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원형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가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면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다.
아기는 그 통제할 수 없는,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특성 때문에 사랑을 받기에, 어른과는 다르다.
나이가 들면서 애정은 성취와 관련을 맺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훌륭한 행동으로 남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근저에 깔린 감정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상대는 그의 반지르르한 표면 밑에서 변덕스러움을 감지하고 속물의 무리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지위의 상징들을 다급하게 갈망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 즉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팔고 다니거나 호사스러운 장식물에 연연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별이다.
출생과 운에 따른 모든 특권을 폐지했을 때, 모든 사람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릴 때, 야망이 큰 사람은 위대한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 금세 교정되고 마는 망상이다.
모든 것이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엄격한 계급체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의롭지 못했으나,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성취를 비교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는 자유였다. 덕분에 그들은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은 우리가 내세운 것보다 이룬 것이 많을 때 상승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부는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결국 부는 도덕적인 인간에게만 찾아온다. 시편 저자와 마찬가지로 가끔 악한 자가 번창하는 것을 보기도 하나, 그것은 가끔일 뿐이다. 경건한 삶에는 부가 따른다." 존 D. 록펠러.
과도한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로 영원한 부를 얻기 어려운 이유이다.
생물학적 원리 자체가 자비라는 개념과는 양립할 수 없다.
"과부와 고아가 죽기 살기로 안간힘을 쓰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럼에도 그 일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보편적 인류의 이익과 연결시켜보면, 그런 가혹한 불행도 은혜가 넘치는 일로 보이게 된다. 병든 부모의 자녀를 일찍 무덤으로 보내는 것과 똑같은 은혜다. 자연 질서에 따라 사회는 병약하고, 저능하고, 느리고, 우유부단하고, 신의 없는 구성원을 끊임없이 배설하고 있다. 그들이 살 만큼 완전하다면 살 것이고, 그럴 경우에는 그들이 사는 것이 좋은 일이다. 만일 그들이 살 만큼 완전하지 않다면 죽을 것이고, 그럴 경우에는 그들이 죽는 것이 최선이다." 하버트 스펜서, 사회통계학.
"자선으로 먹여살리는 주정뱅이 부랑자 또는 무익한 게으름뱅이 하나하나가 이웃을 부도덕하게 감염시킨다. 열심히 일하는 근면한 사람에게 그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더 쉬운 길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정은 적을수록 좋다. 자선 행위로는 개인이든 인류든 나아질 수가 없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귀한 사람은 결코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앤드루 카네기, 자서전.
"지위가 성취에 의존한다면 성공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것은 재능과 그 재능을 믿을 만하게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은 거짓되고, 음험하고, 기만적이고, 교활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탐욕스럽고 남의 이익에는 둔감하므로, 적게 믿고 그보다 더 적게 신뢰한다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귀차르디니.
"세상은 장점 자체보다는 장점의 표시에 보답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라로슈푸코.
"중요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실패는 감추고 성공은 과장하라. 이것은 속임수이지만, 사실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당신 운명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늘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좋다." 귀차르디니.
그래서 기업 임원 회의에서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자료를 보기 좋게 조작하여 회장에게 보고를 하면, 회장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안 한다. 그저 당신의 주군과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 라브뤼예르.
"다수는 착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으므로, 친절보다는 엄격함에 의지해야 한다." 귀차르디니.
새로운 제품과 용역의 손에 낡은 것이 금방 밀려나는 현상은 경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우리들을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판단만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에픽테토스.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에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 금,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마르쿠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쇼펜하우어.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필수품이라고 할 때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상품만이 아니라, 나라의 관습에 따라 아무리 계급이 낮다 해도 평판이 좋은 사람으로서 그것이 없으면 품위를 지킬 수 없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이 생존에는 모자라지 않는다 해도 공동체의 소득에 비해 현저하게 뒤처지면 언제나 가난에 시달리게 된다. 그럴 경우 그들은 공동체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최소한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가질 수 없으며, 품위가 없다는 공동체의 심판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가 없다." J.K. 갤브레이스.
아무리 우아하고 세련된 자동차라도 그 만족감은 인간관계가 주는 만족감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을 살핀 기록인 '참회록'에서 '전쟁과 평화' 와 '안나 카레리나'로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얻은 뒤인 쉰한 살 때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치나 신의 가치를 따라 산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를 따라 살았으며,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지고,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불안한 욕망을 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속한 사교계에서는 야망, 권력에 대한 집착, 선망, 호색, 오만, 분노, 복수를 존중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자 이전의 야망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심이 생겼다.
우리의 건강이 좋고 권력도 막강할 때는 우리를 칭찬하는 사람이 진짜 애정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어떤 이익을 노리고 그러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나 때문인가 아니면 나의 사회적 지위 때문인가?" 하고 물어볼 용기 또는 냉소적 태도는 보여주기 힘들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교 생활에 진정성이 찾아온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 위신, 권력으로는 우리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어린 아이처럼 위로를 갈망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지위를 얻은 잃은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해골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억압적인 의견도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의 아편에는 해독제가 없다. 몇 세대가 흘러도 나무들 몇 그루는 그대로 서 있다. 그러나 유서 깊은 집안이라 해도 떡갈나무 세 그루만큼도 오래 가지 못한다." 브라운.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모든 인간이 귀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런 인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태도를 조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기독교는 위계의 개념을 없앤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윤리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재규정했다. 가난이 선과 공존할 수 있고, 초라한 직업이 고귀한 영혼과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부유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사치품, 그리고 이른바 생활에 편리한 물건들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류의 향상에 장애가 된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영혼에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은 필요하지 않다." 소로우.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지위에 따른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수밖에 없는 대가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