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타인과의 경쟁이 없는 직업
항공사 조종사는 타인과의 경쟁이 없는 직업이다.
어떤 누구도 현직 조종사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쉬는 날에 시간을 내어 부족한 점을 찾아 공부해야 한다.
해마다 치뤄지는 평가에서 이론 지식이나 비행 실력이 부족하면 재시험을 치고, 그때에도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경고 없이 해고 통보를 받는다.
학교처럼 선생님들이 공부해야 할 것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비행 중에 모르는 것이 생기면 비행이 끝난 후에 스스로 교범을 찾아서 공부해야 한다.
지금 조종사가 되고자 공부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겠다. 비행의 시작부터 은퇴하는 순간까지 그 생활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누군가가 정기평가에서 탈락하여 비행을 대신 들어간 적이 있다.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것이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비행 시간만 쌓인다고 기장이 될 수는 없다. 승급 심사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기장이 되지 못하고 부기장으로 경력이 끝난다.
물론 본인의 선택으로 부기장으로서만 계속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간혹 입사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적당히 공부하다가 교육 과정을 못 따라가서 해고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지금 비행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앞으로 배워야 할 내용의 10% 정도이며, 나머지는 취업 전, 입사 후 부기장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만약 일반 회사처럼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경력이 쌓이면 이직하는 방식으로 일하고자 한다면 이 직업은 추천하지 않는다. 굉장히 버티기 힘들다.
ㆍ한국 교육제도의 그늘
나는 한국 교육제도의 가장 큰 문제가 주입식 교육이 아닌 타인과의 경쟁이라고 보고 있다.
학교에서도 경쟁을 하고, 회사에서도 경쟁을 시킨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과의 경쟁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쟁인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타인과의 경쟁에 익숙해진 한국 학생들은 비행 교육을 받을 때에도 끊임 없이 주변의 누군가와 비교를 하고, 쉽게 절망에 빠진다.
반대로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면, 안심하고 여행을 가거나 파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보았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빨리 한국 교육제도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천한다.
단기적으로는 경쟁을 통한 목표 달성은 효율적이다. 단, 주변에 경쟁자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시험 전날에 옆집에 사는 친구가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고 자기도 따라한다. 결국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시험을 망치게 된다.
PPL, IFR, CPL, JET RATING, SIM CHK, RTE CHK, CPT CHK 등, 매년마다 치뤄지는 시험들에서 살아 남으려면 스스로와의 싸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떤 누구도 휴일에 공부하지 않는다고 강요하지 않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관여하지 않는다. 단, 정해진 날짜에 일정 수준이 나오지 않으면 해고될 뿐이다.
일반 직장인들은 주변 사람들과 쉴 새 없이 경쟁하고 진급하려고 실적을 쌓고 타인과 경쟁하지만 이곳에서는 타인과의 경쟁이 없다.
그러니 자기관리에 소홀하거나 스스로와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면 조종사 생활이 굉장히 힘들어질 수도 있다.
타인과의 경쟁으로 인해 조급함이 생겨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두르면 반드시 일이 틀어진다.
나는 아직 이륙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급하다고 조급하게 출발하게 되면, 결국 다시 돌아와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험상으로도 비행시간을 맞추기 위해 절차를 생략하거나 건너뛰거나 순서를 바꾼 경우에는 항상 문제가 뒤따랐다.
ㆍ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다른 사람이 걸은 길만 쫓아가는 것 보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달성하며 목표를 향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남들이 나보다 앞서나가도 부러워하지 않고, 내가 바라는 삶의 목표를 정확히 조준하고 필요한 것들만 챙겨 길을 떠나면 몸이 가볍다.
주변에서 벤츠를 탄다고, 금수저 집안에 인맥도 있다고 부러워하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원하는 목표만 확실하다면 흔들리지 않는다.
여유가 되면 뒤처지는 사람을 함께 끌고 오면 더 좋다. 반드시 그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긴다.
자신은 남들처럼 열심히 했는데 자신만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내 눈에는 내가 남들보다 못하는 부분만 보이니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타인의 실력을 내 성장의 지표로 삼는 것은 좋으나, 타인과 경쟁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내가 잘하는 부분도 더 잘할 수 있게 스스로와 경쟁해야 한다.
착륙이 잘 안되면 잘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그대로 따라해도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핵심은 PHAK, AFM에 전부 다 나와있다.
책을 보고 공부를 하거나 SIM을 타거나, 내가 비행하는 것을 녹화해서 다시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슬럼프라는 말은 자신을 제외한 주변 환경을 탓하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를 안 한 것이고,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ㆍ포기해야 하는 것들
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한가지 있다.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것 한 가지를 버리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 게임과 만화책으로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었다.
성적이 주변 친구들만큼 적당히 나왔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에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지만, 졸업 후 만난 사회는 학교와는 달랐다.
그 이후, 컴퓨터를 버리고, 인터넷 선을 잘라버리고, 게임 아이디를 전부 삭제하고, 휴대폰도 없애고, 술, 담배, 연애,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약 10년 정도를 보냈고,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가 나왔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아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어차피 전역하기 전까지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만약 부양할 가족들이 있는 사람이 이 길을 가겠다면, 금수저가 아닌 이상 경제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 여파는 모두 가족들의 몫이다.
약 2년 정도는 가족들이 희생해야 하므로, 만약 가족들이 반대한다면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한다면 하면 안된다.
ㆍ스스로를 시험하는 순간들
조종사가 되면 주변의 많은 유혹과 싸우게 된다. 비교적 쉬는 시간이 많은 편이고, 해외에 나가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동남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성매매가 활성화 되어있고, 현지 사람들도 성매매에 대해 관대하다. 어떤 사람들은 성매매 업소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성별에 관계 없이 마음만 먹으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방탕하게 놀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얼마 전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던 이태원 클럽에 국내 조종사와 승무원들 여럿이 들렀다가 회사에 통보되기도 했다. 회사가 좋게 볼리 만무하다.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비행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들보다 깨끗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술과 담배처럼 개인의 기호에 따르는 것이고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다.
단순히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강요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지, 다른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동료에게 성매매나 바람을 피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이자 깨끗한 척을 한다며 불쾌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 적도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시험하는 순간들은 계속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런 유혹들은 보통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 인생을 망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고 옳은 길을 갈 것인지는 모두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내가 공부할 당시, 미국 비행학교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었다.
비행을 처음 하게 되면 당연히 쉽지 않다. 낯선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문화 속에서 공부까지 해야 하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계속 놀러 다니거나 친구들과 같이 모여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비행이 잘 되지 않아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머리를 식힌 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금 더 쉽게 생각하면 되겠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는 것인지, 잘 안되어서 이 일이 싫어지는 것인지 말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내가 정말 이 일이 하고 싶은지 고민을 더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항공사 입사 후 교육을 받다보면 잘되는 것보다 안되는 것이 더 많고, 문제의 양도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