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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나를 키우셨던 두 번째 어머니로 기억되어 있어서 더욱 각별했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회사에서 짐을 싸고 부산으로 가는 길에 기차 안에서 차트를 부스럭거리며 다음 날 있을 비행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생 사촌의 백혈병으로 인한 죽음, 할머니, 할아버지, 비행사고로 순직한 동료의 아버지, 동갑내기 사촌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암으로 사망한 20대 중반을 갓 넘긴 친구, 가장 최근의 외할머니의 장례식까지 거쳐오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적진 않았다.

 

이 책에서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지만, 대표적인 주제 하나만 꼽으라면 상실이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상실이라고 생각된다.

 

군인으로 생활하며 한 지역에서 짧게는 몇 주에서 1년을 넘긴 적이 없었다. 7년 동안 이사를 10번 넘게 다니다보니 잦은 상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애착을 가지기 어렵게 되었고, 버리고 정리하는 것에 더욱 익숙해지게 되었다.

 

인생에서 물건이나 사람, 사랑같이 많은 것을 얻게 되지만, 얻은 만큼 필연적으로 상실 또한 따라오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연인과 헤어지며 겪게되는 상실, 추억이 깃든 물건을 잃어버리는 상실, 직업과 꿈의 상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언젠가 끝은 오게 된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더 이상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다시 찾으려 애쓰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돌이키려 몸부림치다보면 그 상실감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고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빛나던 과거의 자신을 내세우며 지나간 시간을 붙들고 있는 노인들이 많고, 뒤돌아보면 나 또한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미친듯이 노력했던 순간들을 내세우며 훌륭한 꼰대의 길을 걷지 않고 있나 생각이 들어 뜨끔하기도 한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고, 이런 빛나던 과거는 더 이상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타인의 귀감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더라도 타인을 공감하고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람들이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서 '성공'이라는 의미를 나는 잘 이해하고 있는지, 언젠가 죽음에 임박해 뒤돌아봤을 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도록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결국 책이 말하는 내용은 모든 것은 상실하겠지만, 하지만 있는 순간 그대로를 즐기고 사랑하고 살라고 한다.

상실을 먼저 생각하면 사랑할 수 없다. 이미 끝을 알고 있는 영화가 재미있을리 없을 것이다.

 

가끔은 뒷일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순간이 즐겁다면 있는 그대로를 즐기고 사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뒷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오랜 습관이라 쉽게 될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상실에 익숙해지기보다 순간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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